| 제목 | [2026.05.17]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에게 신유의 은혜를 베푸시며, 하루하루 평안히 잠들고 또 새로운 날을 상쾌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2026-05-17 1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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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에게 신유의 은혜를 베푸시며, 하루하루 평안히 잠들고 또 새로운 날을 상쾌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김태련
▶ 저는 1936년생으로, 은혜와진리교회 안산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신앙생활을 있는 권사입니다. 저는 불교신자였던 제가 교회에 처음 나갔던 1978년 여름의 그 주일을 잊지 못합니다. 그 후 저는 예수님을 믿게 되어 인생이 완전히 바뀌고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해 초여름에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저에게 사기를 벌인 여자를 찾으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친척 아주머니 집을 몇 십년 만에 방문하였습니다. 그 아주머니와 아저씨 부부가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집안에서 성격이 괴팍하고 성질이 고약하기로 소문났으며 온갖 미신을 다 좇던 분이었는데 매우 온순하고 자상한 성품으로 변하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아주머니의 인도로 교회의 예배에 처음 참석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미용비누와 세제 등 생활용품을 제조하는 대기업의 부산총판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사업장의 사무실로 임차하여 쓰던 집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저는 법적인 다툼을 벌이는 동안 자주 상경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문제가 잘 해결된 후에 저의 교만함을 회개하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기 위해 저 혼자 1남 4녀 자녀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저는 어린 자식들의 의식주를 위해 이불 장사와 옷 장사를 하였습니다. 살림살이가 어렵고 몸은 힘들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양하게 체험하면서 몸의 피곤함을 잊고 사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과외공부를 시키지 못하는 형편임에도 아이들이 전교1등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잘 자라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이 번창할 때에 그만 욕심이 생겨 1990년에 고향언니와 동업하여 강화도에 2천 평이 넘는 큰 양식장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4년 동안 거금을 들여 만들어서 1995년에 준공하고 돔 양식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인간적인 욕심으로 경제활동에 전념하는 동안 연이어 재난이 닥쳤습니다. 폭우와 폭설 등 천재지변에 이어서, IMF 사태로 주거래 은행이 퇴출되면서 그 여파로 수십 억원의 손실을 입고 결국 양식업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 1:21)라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셨습니다. 아이들이 낙심하지 않고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 후 딸 넷 모두 박사, 변호사, 의사인 전문직 사위와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 중 셋째 딸은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명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사위와 함께 학위를 받아서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손녀가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손녀사위와 함께 영국과 스위스에서 각각 외교관으로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하시고 보살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019년 봄에 저는 공기 좋고 조용한 곳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에 작은 손가방 하나만 들고 아무 전철이나 탔는데 4호선 전철이었고, 무작정 내린 곳이 안산 상록수역이었습니다. 눈에 띈 부동산중개소에 들어가서 마침 비어 있는 셋집을 구하여 그날부터 들어가 살았습니다. 빈 몸으로 왔기에 당장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님, 제가 이것이 필요합니다.”하고 기도하면 금방 밖에서 제게 필요한 그것을 찾고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야 하는데’ 어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교회가 없을까 기도하며 찾던 중에 어떤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조용목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은혜와진리교회에 다니는 권사님이셨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또 고맙던지요, 전에 설교말씀을 듣고 은혜를 많이 받고 존경하던 목사님이셨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만을 전하시는 당회장 조용목 목사님을 뵈니 저를 위해 섭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손길을 느끼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또 하나님은 저를 위해 신실하고 사랑이 많으신 구역장님을 만나게 해 주셨고, 그리고 구역의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매일 감사가 넘치며 주 안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게 해 주십니다.
눈이 계속 불편하여 안과에 갔더니 황반변성이라며 서울에 있는 큰 안과병원에 가라고 하므로, 가서 검진을 받고 수술 날짜를 잡고 돌아왔습니다. ‘내 나이가 아흔인데, 한쪽 눈은 잘 보이니 이 한쪽 눈으로 그냥 살면 되지’ 했다가, 아버지 앞에 돌아온 탕자처럼 그동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잘한 일이 없다는 생각에 ‘하나님 아버지, 저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울며 기도하다가 잠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 TV를 켰는데, 이상하게도 전과 달리 화면과 글씨가 밝게 보였습니다. 왜 그럴까, 궁금한 마음에 안과에 갔더니 황반변성 현상이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크게 웃으면서 “우리 하나님이 치료해 주셨습니다!”하고는 병원을 나왔습니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양치질하고 나오다가 넘어졌습니다. 어깨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어깨뼈가 금이 갔다며 ‘깁스’를 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나중에 하겠다고 하고 팔걸이만 한 채 집에 돌아왔습니다. 마침 서울에 사는 아들이 보러 온다기에 안산에서 전철을 타면 한 번에 가는데 내가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가서 아들 가족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아픈 어깨 쪽의 손이 바르르 떨리면서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손은 팔걸이에 의지하고 또 한 손에는 며느리가 싸준 음식과 손가방을 들고서 전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한 발을 올려놓는 순간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정신을 잃었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괜찮냐고 묻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보니 에스컬레이터 맨 아래 칸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에 낮에 있었던 이 일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심하게 넘어졌는데도 어떻게 다친 데가 없이 멀쩡하게 걸어서 집에 왔을까’ ‘아, 하나님이 또 나를 지켜 주셨구나’ 하는 생각에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상하게 몸이 가뿐했습니다. 아파서 올리지 못하던 팔이 다 나아서 손이 위로 번쩍 올라가고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받고 보니 간증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곧장 아들에게 전화하여 어제와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꼭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하나님을 신앙하는 생활을 하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역장님에게도 연락하여 구역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을 간증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할렐루야! 저의 노년에 이처럼 하나님께서 저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외롭지 않게 해주시고, 은혜와진리교회에서 말씀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우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기도하여 응답받으며 복된 삶을 살게 해주시는 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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