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증
98.5.2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이상용
ᅵ는 이곳 농촌의 전통적인 유교관습을 섬기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 하지 못한 사정으로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신 문 배달, 화물차 청소, 막노동 등 고학으로 학업을 이어 나가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마 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친 구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몇 번 가보기는 했지만 신앙 생활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61년 군대에 입 대할 무렵 안양에 계신 당숙의 인도로 교회에 다 니기 시작했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지 못 한채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해오던 중 결혼하면
서 세속에 치우쳤고 주님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한 번 택한 양을 그냥 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손길로 여러 번 저와 가족들을 치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도 저 는 이러한 시련들이 타락한 죄인을 깨우치기 위해 매를 드시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세속적인 방법으 로 해결하려고만 애썼습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저는 35년간 공무원으로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습니 다. 그러나 마음에는 늘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86 년 광명시장을 거쳐 '88년 안산시장으로 있으면서 기독교연합회 여러 목사님들과 늘 친분을 맺고 교 제를 나누었으며, 고향 안산을 위해 경찰서, 세무 서, 노동사무소 등을 세우는 등 보람있는 일을 많 이 할 수 있었고 '95년 수원시장을 끝으로 공직생 활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민선시장으로 출 마하기 위해 안산에 내려오면서 한 집사님의 인도 로 은혜와진리교회에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 다. 그리고 '95년 6.27 지방 선거에 시장후보로 출 마했으나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저에게 그때의 좌절과 낙심은 이 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 나 주님께서는 저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낙선한 그 다음날 성가합창대회에 참가한 저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눈물로 회개 하고 기도하라 그리고 봉사하라. 그 이후 저는 하 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98년 봄 당회장 목사님 께서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 해 주실 때 저 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고 그것 을 지켜보시던 남선교회 회장 김장로님께서 그 날 밤 저의 집으로 심방을 오셨습니다. 올바른 신앙 생활의 길을 깨우쳐 주시면서, 장로님의 신 앙 간증을 저에게 들려주실 때 저는 비로소 주 님께서 보잘것 없는 이 죄인을 아직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일 성수하기 위해 애썼고 열심히 구역 연합 성령대망회에 참석하면서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 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 하여 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찬송 410장) 주님 께서 구원의 확신을 주시면서 여러 가지로 역사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도가 열리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더 크신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그 동안 신앙 생활 에 무관심했던 아내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지난 35년간 쌓은 행정실무 경험과 역량을 다하여 나 의 고향 안산시의 발전을 위해 다시 한 번 헌신 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