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2026.10.25] 저처럼 미약한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도 사랑과 권능의 손길을 내미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2026-10-25 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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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미약한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도 사랑과 권능의 손길을 내미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박미희
▶ 참으로 어렵게 저희 부부에게서 귀한 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제가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하자 친정어머니의 마음이 조급해지셨습니다. “아이의 모습이 목침 모양이어도 좋으니 어서 아이 하나만 낳으라”고 보채셨습니다. 별의별 약을 다 먹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으나 저의 몸무게만 늘어날 뿐 아이 소식은 없었습니다. 병원의 도움을 받아보고자 여러 병원을 다녀보았으나 역시 소용없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인공수정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전문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단번에 성공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술을 한 다음 달에, 보고 싶지 않았던 생리혈이 나와서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게 아이를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 스스로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어디 주시나 안 주시나 볼게요.” 그런 속마음으로 다시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인공수정은 12번 정도 시도해야 한 번 성공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3개월 후로 시험관 시술 날짜를 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왠지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아이를 갖게 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리를 쭉 뻗고 앉은 채 그 자리에서 울면서 힘을 내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떼를 썼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데도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하나님의 딸, 안 할래요. 하나님! 죄송해요.” 울고 불며 기도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달력을 보니 마침 수요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수요예배가 어쩌면 제가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예배가 될지도 몰라요….” 그러면서 예배 시간에 늦지 않게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그날의 수요예배는 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회장 조용목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신유와 축복의 기도를 해 주실 때에 처음 느껴보는 이상야릇한 느낌과 동시에 온몸이 찌릿하며 순간 몸속에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슬픈 일을 당한 성도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에,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 기도를 들었다…”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제 귀에 들렸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어서 순간 어리둥절했다가 곧 “할렐루야!” “아멘!”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쉽게 아이를 주실 거면서, 그동안 왜 저를 힘들게 하셨나요.” 한없이 기쁘면서도 저는 또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임신 4개월이 되었을 때 입덧이 매우 심하여 죽을 것 같다며 하나님께 또 투정을 부릴 때에, 저의 삶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아이를 가져 행복해할 겨를도 없이 저는 어머니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자리에 누운 지 두 달이 되었을 때는 극심한 입덧에 더하여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심신이 지치고 힘이 들어 마당 한가운데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이렇게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너무 힘들어서 지금의 상황을 제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더는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지금 제 뱃속에 있는 제 아이를 데려가시고, 대신 어머니를 다시 걷게 해주세요.”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투병이었습니다. 친정아버지는 어머니를 남 보듯 하셨고, 동생들은 회사일과 학교 공부로 바쁘거나 아직 어렸기 때문에 어머니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가끔 남동생이 저를 따라서 어머니가 계신 병원에 다녔지만 사실 저 혼자 간병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힘겨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를 데려가시고 엄마를 다시 걷게 해달라는 호소를 하나님께 할 수가 있을까요. 그때 제 심정이 그랬습니다. 그랬던 저였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권능 베푸심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능력을 베푸시고 아이와 어머니를 모두 살려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몸져누운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부터 어머니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여름 더위에 제가 흘린 땀과 어머니의 용변 냄새가 방안에 가득한 상태에서 어머니가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더니 하루는 저를 부르시고는 “일어서서 걸어 보게, 나를 좀 붙들어다오.”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걸음마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더 붙들어 주시고 더 도와주셔서 마침내 어머니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셨습니다. 겨우 숨만 붙어 있던 어머니에게 하나님께서 용기와 힘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시고, 하나님께서 스스로 걸음을 걷게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처럼 친정어머니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치료의 기적이 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고 두 발로 걷게 되셨지만, 저는 출산 예정일이 11일이나 지났는데도 아이가 세상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남편이 고향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고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서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출산 예정일을 넘겨 12일째가 된 다음 날 아침에,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몸이 침대에 달라붙은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만 일어나서 밥을 먹으라고 하셨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급하게 부른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고향에 내려간 남편 대신 아직 몸이 성치 않은 친정어머니가 대신 보호자로서 수술동의서에 서명하셨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요. 수술 도중 의사 선생님이 수술실에서 나와서 어머니에게 산모와 아이 둘 중 한 명만 살릴 수 있는 위급한 상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때에 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저는 지금도 상상조차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는 부득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친정어머니가 왜 그런 결정을 하셨을까요. 어머니는 환자 보호자와 가족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의 수군거림, 그들이 하는 이런저런 부정적인 말을 듣는 중에도 ‘내 딸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내 딸도 틀림없이 살려주실 것이다’는 믿음이 생겨서 그랬다고 나중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손녀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건강한 울음소리를 내며 태어났고, 어머니의 딸인 저는 7시간 넘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동생들과 그 때까지 외손자는 필요없다고 하셨던 친정아버지가 급히 병원으로 달려오셨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저를 눈 뜨게 해 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저를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울고 계셨습니다.
대부분의 산모는 수술하고 일주일이면 퇴원을 하는데, 저는 마취 후에 독감을 앓게 되었고 계속 열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몸이 많이 아프고 힘들어서 아이를 볼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입원 5일째가 되던 날, 아이 면회 시간이 다가오자 어머니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독한 것, 아무리 아프고 힘들다 해도 아이가 안 보고 싶니?” 그때서야 저는 휠체어를 타고 제 아이를 보러 갔습니다. 많은 아기 가운데 가장 한가운데에 제 아이가 있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아기들 중에 제일 못생긴 아기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제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였습니다.
저처럼 작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도 이처럼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는 굳센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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