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26.09.13]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겠습니다.2026-09-13 13:01
작성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겠습니다."


최길임



▶ 할렐루야! 저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은혜와진리교회 남양성전에서 주님을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권사입니다. 지나온 제 인생의 고비마다 저를 굳게 붙들어 주시고 눈물과 한숨을 기쁨과 감사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찬송하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저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지금까지 35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주의 성전을 지키며 주를 섬기게 하신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가족이 정든 고향을 떠나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경기도 안산의 한 지역으로 이사를 온 때가 1979년이었습니다. 당시 남편에게 마땅하고 안정된 직장이 없어서 저희 가족의 생활이 궁핍하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집의 큰방에 세 들어 사는 교회 권사님의 방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찬송 소리에 제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서 저렇게 노래 부르며 살게 되는가 보다.’ 부럽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송의 은혜에 이끌려 교회에 가고 예배에 참석한 것이 저의 신앙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때는 안산에 은혜와진리교회의 교회당이 세워지기 전이어서, 주일이 되면 새벽 4시에 일어나 동네의 캄캄한 밤길을 걸어 버스를 타고 안양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등에 업고 손을 굳게 붙잡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렇게 안양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조용목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이 제 고단한 삶 가운데 유일한 기쁨이 되고 안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향한 굳센 믿음을 가지지 아니하였을 때 현실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직장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아이들 끼니조차 거를 정도로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답답한 마음에 동네 점집의 문 앞을 서성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분명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저를 책망하시고, 그리고 저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즉시 발길을 돌리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죽으나 사나 저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저의 믿음 없음을 긍휼히 여기시고 저를 도와주세요.”


그날 이후, 신기하게도 꼬였던 삶의 문제들이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회사 식당에서 12년을 일하면서, 교회에서 구역장 직분을 받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주일에 회사의 야유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했지만 저는 기꺼이 벌금을 내고 교회에 가서 예배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교회에서 세미나가 있는 날에는 식당일을 서둘러 마치고 작업복 차림 그대로 달려가 참석할 만큼 말씀의 은혜를 사모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주중 예배와 기도회에 참석하고 또 시간을 만들어서 전도하러 다니는 저를 보며 남편의 핍박이 심해졌습니다. 문을 잠가버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예사였고 여러 가지 모진 구박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덤프트럭을 사서 일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험한 운전을 하다가 큰 사고라도 낼까 염려한 저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트럭을 사서 일하는 것에 동의해 줄 터이니, 대신 나와 함께 교회에 가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에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며 동네 사람들이 내다보는 앞에서 저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남편의 거친 언행과 이웃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 이 또한 저의 허물이며 죄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는데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를 그토록 핍박하던 남편이 동네에서 그 난리를 치른지 3일 만에 스스로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30년 넘게 덤프트럭을 운전하면서 단 한 번의 사고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그처럼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일하고, 나아가 집사 직분까지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큰 고비가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억울한 일에 휘말려 곤경에 처했을 때, 저는 골방에서 엎드린 채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을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주님과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도와주셔서 일주일 만에 아들이 무사히 우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에 다니던 고마운 딸이 코로나 감염병이 유행할 때부터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고 주님과 멀어져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또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딸이 다리 수술을 계기로 전도사님과 목사님의 심방을 받고는 돌이켜 신앙생활을 잘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댁의 제삿날에 딸과 사위가 의연하고 단호한 태도로 제사상 앞에 절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저는 감격하였고, 제가 눈물로 뿌린 기도의 씨앗을 마침내 열매로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드렸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3년이 넘도록 연락을 주고받지 못해 제 마음을 몹시 아프게 했던 둘째 며느리와 온전한 화해를 이루고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움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최근에는 제가 하나님의 신유의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수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길에 있던 큰 바윗돌에 그만 정강이를 세게 부딪혔습니다. 통증이 매우 심하여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였지만, 평소 주중예배에서 조명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듬뿍 받고 있었기에 그 아픔을 꾹 참고 먼저 예배를 드린 후에 병원에 갈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날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어찌나 은혜스럽던지, 여러 번을 울컥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어서 목사님이 신유와 축복의 기도를 해 주실 때 아픈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기도를 받는데, 놀랍게도 온몸이 뜨거워졌다가 이내 가벼워지더니 다리의 통증이 씻은듯이 사라졌습니다.


매주 꼬박꼬박 드리는 주일과 주중 예배때마다 당회장 조용목 목사님과 부당회장 조명제 목사님께서 어찌 그리 제 마음을 잘 아시는지, 설교 중에 저의 상황에 딱 맞는 말씀으로 위로와 힘을 주시고, 믿음을 북돋워 주시고, 그 신령한 양식으로 저의 영혼을 부요하게 해 주십니다. 구역장 시절에 저는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끝없이 양 옆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환하고 눈부신 길, 그 길은 당회장 조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말씀해주신 ‘천국 길’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길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생생하여, 앞으로 인생길에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하나님께 예배하며 주님을 섬기는 이 자리를 굳게 지키고 천국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굳게 다짐했었습니다. 그런 저를 주님께서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권능으로 붙들어 주시고 저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할렐루야!


너무 가난해서 6년 동안이나 친정에 가지 못하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는데, 주님 안에서 큰 욕심 없이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더니 이제는 명절에 70명에서 80명에 이르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신앙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당회장 조 목사님께서 빌립보서 강해 설교를 하시며 주신 말씀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 하면서도, 계속 신앙생활의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 말씀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 주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이 소망의 길을 가겠습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 저의 삶 가운데 역사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