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2026.08.23] 질환과 교통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있던 저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치료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2026-08-23 1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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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과 교통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있던 저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치료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최석중
▶ 저는 부모님이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집안 어른의 기일이나 명절 때마다 집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모 대학교 약학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교내 동아리 중에 기독학생회가 있었습니다. 그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 앞에 엎드려 절을 할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 후 한동안 제사를 지내는 날이 되면 회사일로 출장을 간다며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크게 화를 내시고 그날은 조상이 아닌 저의 제삿날처럼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아버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허락을 받기 위해 더 효도하려고 애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시더니, 주일에 교회에 안 가느냐고 물으실 정도로 변화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마음 편히 교회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할 때도, 양가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이었는데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섭리로 대학교 교회에서 교목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1986년 3월 2일에, 저는 처음 은혜와진리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처남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조용목 목사님께서 심방 오셔서 말씀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은혜와진리교회에서 당회장 조용목 목사님의 은혜로운 설교말씀을 듣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마침 제 옆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던 성가대 지휘자님이 저에게 성가대 봉사를 권유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안양성전 실로암 성가대에서 봉사하며 교회와 성도님들을 섬기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가대에서 봉사하면서 저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생활의 즐거움, 교회를 섬기는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총무로, 대장으로 성가대를 섬기면서 저의 믿음이 더욱 굳세어졌습니다. 그 후 18년 동안 주일 11시예배에서 예배 전 찬송을 인도하였습니다. 안양성가국의 부국장과 국장의 직임을 맡고서도 변함없이 예배 전 찬송 인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회장 조 목사님을 찾아 뵙고 말씀드렸더니 기도해 주시며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위암3기말 판정을 받고, 그 이튿날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다른 곳에 전이되지 않아 수술이 가능했습니다. 이어서 항암치료를 6차에 걸쳐서 받았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즐겁게 하고 있던 찬송 인도를 못하는 것이 무척 안타깝고 마음 아팠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에서 주는 식사를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밖에 나가서 조금이나마 입맛이 생기는 음식을 골라서 먹곤 했는데, 3차 항암치료를 받을 때부터는 음식을 먹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토해버렸습니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항암치료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먹고 토하고 또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항암치료를 다 마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먼저 당회장 조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치료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치유되어 다시 찬송 인도를 하게 되었고 또한 성가연합회에서 부회장의 중책을 맡아 헌신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감사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또 한 번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6시에 동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천국의 계단’이라는 기구에서 운동을 하는데, 평소에 5분을 운동해도 힘든 줄을 몰랐는데 이날은 운동을 시작한지 2분 30초만에 운동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에 병원에 가기로 하고, 아침에 운영하는 약국으로 출근하는데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국이 멀지 않아서 그 자리에 차를 세우고, 곧바로 약국 앞에 있는 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은 후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하였습니다.
그 며칠 후인 지난 4월 18일 토요일이었습니다. 일산에서 가족 모임이 있어 차를 운전하여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겼는지, 그만 앞차를 추돌하고 말았습니다. 옆자리에 아내가 타고 있었는데 우리 두 사람의 좌석에서 모두 에어백이 터질 정도로 충격이 컸고, 그 순간 저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아내가 보험회사에 급히 전화하여 직원을 불러서 차와 함께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시흥시의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겁이 나고 당황한 아내는 장로회 회장이신 유훈 장로님께 급히 연락을 드렸고, 제가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을 때 달려오신 장로님이 제 곁에서 울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심폐소생술 15분 만에 저는 의식을 찾았고, 장로님의 도움으로 안양 한림대병원으로 옮겨져 추가 스텐트 시술을 통해 막힌 혈관을 다시 뚫었다고 합니다.
당회장 조용목 목사님께서 전화로 저에게 신유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의식은 찾았지만 아직 정신이 없어서 조 목사님이 기도해 주실 때에 저는 그저 “아멘” “아멘”만 했습니다. 조 목사님께서 네 번이나 전화로 기도해 주셨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저는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의견에 따라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재차 정밀 검진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담당 주치의이신 교수님을 만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많이 회복되어 퇴원을 하고, 집에서 식사하고 운동도 하면서 조금씩 더 회복되는 상태에서 드디어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당회장 조 목사님께서 저를 품에 안아 주시고, 그리고 기도해 주시는데 제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얼마나 황송하고 또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7월 28일이 다시 병원에 가서 심장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피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교수님에게 듣는 날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4월 30일에 받은 검사에서는 심장이 한 번 수축할 때 좌심실에서 방출되는 혈액량을 측정하는 ‘심박출률’이 정상인은 55~70인데 저는 28이었습니다. 수치가 35가 넘지 않으면 부정맥이 생기므로 제세동기라는 기구를 심장에 장착해야 한다고 합니다. 검사받기 하루 전인 27일에 당회장 조 목사님께서 저의 심박출률이 35가 훨씬 넘도록 세심하게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검사에서 수치가 44가 되어 제세동기를 달지 않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할렐루야!
이제는 지금까지의 치료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건강관리를 잘해서 빠른 시일에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당회장 조용목 목사님과 사모님, 부당회장 조명제 목사님, 유훈 장로회장님을 비롯한 장로님들과 교역자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성가대원들과 기도해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