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24.01.14] 저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고 저의 ...오영화2024-01-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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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고 저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 암을 치료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 영 화




▶저는 중매로 만난 남편과 1976년 11월에 결혼을 하고 살림하는 단칸방이 딸린 가게를 얻어 쌀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 여름 장마철에 엄청난 폭우로 안양천이 범람하여 가게와 방이 물에 잠기고 쌀가마와 집안 가재도구가 모두 떠내려가 남아있는 살림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가게를 복구하고 장사를 계속하던 이듬해에 이번에는 남편이 배달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30개월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지만 척추신경이 마비되어 장애1등급 판정을 받고 평생을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안양시 호계동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이사를 했습니다. 집 짓는데 부족해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1층과 2층은 세를 놓고 지하방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남편이 손재주가 좋아 자전거 수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1986년 여름에 시어머니 병환이 위중하여 남편과 함께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용 세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남편이 아들을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브레이크가 고장나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에 갔더니 아들과 남편이 나란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가벼운 외상이어서 곧 퇴원을 하였지만 남편은 그때 저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날 밤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저희는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남편의 상태가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며 그만 집으로 모시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아들을 시동생에게 맡기고 병원비로 쓰기 위해 가게의 전세금을 빼서 남편을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남편은 목에 영양분 공급을 하는 삽관 수술까지 받았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입원비와 치료비가 일주일 간격으로 청구되는 상황에서, 남편의 형제들과 시누이까지 더 이상 남편을 병원에 두지 말고 이제부터 아들과 둘이 살 생각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병원에서 가까운 큰 시누이 집에서 잠을 자고 정해진 면회시간에 병원을 오가며 남편을 간병하였습니다.



의학적으로 남편이 나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 때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았지만 간절하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를 하고 병원에 남편 면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의 눈과 저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그동안 전혀 미동도 없던 남편의 눈동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눈동자는 돌아가지만 여전히 의식은 없는 상태라며 부정적으로 말했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을 드리고 기적을 보여달라고 애원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에 남편의 입에서 ‘아!’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남편이 드디어 깨어났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 치료에 대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기를, 그때 하얀 옷을 입은 어떤 분이 상자를 열고 안에 있는 주검을 꺼내서 만지는 순간 그가 살아나서 걸어가는 기이한 장면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그날 정신이 돌아오고 이후 빠르게 회복되어 추석을 앞두고 퇴원을 하였습니다.



남편도 저도 함께 교회에 다니기로 결심을 하였지만 지하에 있는 방에서 생활하고 있고 또한 휠체어에 의지하여 이동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다닐 교회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용기를 내서 자주 찾아와서 복음전도지를 전해주던 은혜와진리교회의 구역장님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무척 반가워하시고 아무 염려말라며 친절하게 저희 부부를 교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1987년 7월, 처음 은혜와진리교회에 나간 그날부터 당회장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동되어 예배중심으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집도 지하에서 1층으로 옮기고 여러 남성 집사님들이 도와주셔서 남편도 구역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남편이 성전에 드나들며 예배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3년 후인 1990년에 저희 부부가 함께 서리집사 임명을 받을 때는 너무도 기쁘고 감격해서 한없이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은 욕창으로 고생하였지만 예배시간만 되면 잘 참고 얼굴빛이 밝고 환하게 변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긍정적이고 마음도 온화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염증 때문에 자주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남편을 돌보고 가게를 운영하느라 늘 분주하여 아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건강하고 유순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도 교회학교에서 열심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아들이 그저 고맙고 아들을 친히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했습니다. 형편상 학원에 보낸 적이 없었지만 아들은 원하던 대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졸업하였습니다. 철저히 주일성수를 하고 성가대 등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성가대에서 봉사하는 자매의 소개로 신실한 자매를 만나 2004년에 결혼하여 1남1녀를 두었습니다.



남편은 결석 등 신장병으로 인해 신장투석을 받는 상황에서 2006년에 안수집사로 임직되었습니다. 그날은 우리 가족의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그때 찍은 기념사진은 우리 가족의 제일 크고 멋진 가족사진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긴 투병 기간에도 마음만은 더없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2010년 2월 13일에 하나님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다시 사망이 없고 아픈 것이 없는’ 천국에 갔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하나뿐인 아들이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지 8년이 넘었지만 영주권이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여 올해 초 작정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11살이던 손자가 어느덧 19살이 되고 대견하게도 캐나다의 한 명문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영주권이 나오지 않아 학비문제 등으로 입학이 불투명한 상태였습니다. 빨리 영주권이 나오지 않으면 입학을 포기해야 하는 손자를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감사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애타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작정기도 중이던 3월 23일에,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으로부터 와서 재검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올해 5월이 국가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달인데 저는 그보다 앞서 건강검진을 받았었습니다. 그 결과를 우편을 통해 받았지만 저는 ‘이상 없겠지’ 하고 확인하지 않았었습니다. 재검에서 초음파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여 조직검사를 받은 결과 유방암 2기초의 상태이고 종양의 크기가 2cm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건강하던 내가 암에 걸렸다는 데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두렵거나 떨리지 않고 담담했습니다. 남편은 앞서 천국에 갔고 아들도 타국에 이민을 가서 보호자도 없는데,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혹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까봐 의사선생님에게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과 동행해 준 수구역장님이 함께 깜짝 놀라며 간곡히 저를 설득하므로 수술을 받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제 옆에서 항상 가족처럼 저를 돌보아주는 수구역장님이 저를 대신해서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을 해주었습니다. 수술할 큰 병원을 알아봐 주고, 또 유방암 수술에 경험이 많은 훌륭한 교수님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연결해주며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수술받을 병원과 집도할 선생님을 결정하여 진료 예약을 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일까지 그 모든 일이 하루 동안에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미리 작정기도를 시작하게 하신 것부터, 저의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친히 섭리해 주셨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몇 달을 기다려서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아주대학교병원에서 4월 17일에 처음 진료를 받고, 5월 11일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4월 18일에 제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던 아들 가족의 영주권 문제가 해결되었고 손자가 합격했던 대학교로부터 입학허가를 받고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아들이 전해왔습니다. 그처럼 아들 가정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하나님께서 일순간에 해결해 주시자 내 병은 까맣게 잊을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그저 놀랍고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아들 가족을 위한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 저의 병도 깨끗이 치료해 주실 것이란 확신과 함께 모든 염려가 다 사라졌습니다.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수술 전날인 5월 10일에 보호자가 필요 없는 통합병실에 입원하였는데 그곳에는 저처럼 큰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간증하고 마치 나는 환자가 아닌 것처럼 그들을 위로해 주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5월 11일에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수술이 잘 되었습니다. 저는 수술대 위에서 신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수술 직후 몸이 춥다고 느끼는 순간 어디선가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깨어났다는 소리가 귀에 들렸습니다. 수술받은 후에도 저는 주위에 있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서 눈물이 날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회장 목사님과 교우들의 기도로 수술 후에 받은 조직검사 결과 항암치료는 받지 않고 방사선 치료와 5년 동안 호르몬 억제제를 먹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로 지금 어떤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없는 상태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역자님들, 권사님들, 국내선교연합회 성가대원들, 교구의 구역장님들, 남성구역 장로님과 안수집사님 등 저를 위해 그동안 기도해 주시고 건강을 회복하는데 큰 힘이 되어 주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