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23.11.19]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장미옥2023-11-1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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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장 미 옥




▶ 제가 5살 때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저희 자매를 강원도 산골의 외갓집에 맡기고 서울로 돈 벌러 가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된 곳은 사진에서 보던 화려한 서울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에 가면 예쁜 교복을 입고 중학교를 다닐 생각에 설레었는데, 인왕산 산자락 동네의 한 집에 7가구가 모여 살며 물도 돈을 주고 양동이로 길어와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공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낮에는 일하면서 야간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힘들었지만 나중에 백마 탄 왕자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옛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견뎠습니다. 그렇지만 꿈에 부풀어 시작한 결혼생활은 저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연탄불에 지은 밥을 먹고 도시락을 들고 서울로 두 번 버스를 갈아타면서 하청을 받아 공사를 하는 매형의 건설회사로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앞이 캄캄했습니다.



친정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는 분과 재혼을 하시고 함께 교회에 다니셨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시더니 조용목 목사님이 안양에 교회를 개척하신다면서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교회가 설립되자 더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행복해하셨습니다. 어머님 댁에서 구역예배를 드릴 때는 제가 가서 구역 성도님들이 교제하면서 간식으로 드실 팥죽을 쑤어 드리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경상도 저의 시댁에는 시할머니와 시부모님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시누이 둘이 살고 있었는데, 저는 어릴 때 외롭게 자란 터라 그처럼 여러 식구가 한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아버님이 장손이어서 명절을 제외하고도 1년에 제사를 9번이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다가 시어머니는 이상한 사이비 종교를 추종하면서 미신을 따랐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기 전이었지만 시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싫었습니다.



1985년도 년말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 연립주택 단지에서 저를 친근하게 대해주던 제 또래 아줌마 집에 놀러갔더니, 수요일인 오늘 교회에 가기로 약속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나도 같이 가겠다고 하고 아줌마를 전도한 권사님을 따라 은혜와진리교회에 가서 2시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처음 듣는 설교였지만 조용목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이 제 가슴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교회에 처음 왔는데 오랜만에 고향 친정집에 온 듯 포근하고 마음이 편안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습니다. 더욱이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여서 더 좋았습니다.



그 후로 구역예배, 주일예배, 주중예배, 단합예배 등 모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였습니다. 그동안 친정어머니와 가까운 친척들에게 잘살고 있는 척, 행복한 척하며 숨길 수밖에 없었던 모든 사정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그전에 없던 여러 가지 소망이 생겼습니다. 의료보험 카드가 없어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비가 부담이 되었는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 전도사님의 기도를 받고 오면 언제 아팠었는지 모르게 나았습니다.



신앙생활 초기에 이런 일도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저와 함께 다니고 저보다 나이가 1살 더 많은 이모가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기에, “이모, 교회에 다녀. 나도 그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교회에 다니면서 소망이 생기고 몸도 건강해졌어…”하는 내용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시댁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시댁에도 종종 안부편지를 쓰던 때였는데 이모와 시부모님에게 각각 보낸 편지봉투 속 편지지가 제 실수로 뒤바뀌어 보내진 것입니다. 시어머님은 “우리 집은 장손집이라 안 된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된다”며 극구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구역 성도 중에 아이가 없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가 있었는데, 교구 전도사님이 심방 오셔서 저랑 둘이 성가대에서 봉사하면서 기도하도록 권하셨습니다. 순종하여 성가대에서 봉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놀랍게도 저희 둘이 동시에 임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남편이 자동차회사에 다니고 나이가 저와 비슷한 옆집 부인이 명절이나 휴가철에 보너스를 받았다면서 자랑을 하였습니다. 제 남편은 일당을 받는 일을 하고 있어서 명절이 지난 다음 달에는 더 경제적으로 쪼들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라고 하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남편이 바로 그 자동차회사에 입사하여 첫 출근한 날짜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1988년 3월 2일입니다. 남편은 이후 35년 동안 일을 잘 하고 최근에 정년퇴직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습니다. 단독주택 2층에 살 때는 여름에 너무 더워서 저녁에 옥상에 물을 뿌려 열기를 식혀야만 밤에 잠들 수 있었고, 겨울에는 습기 찬 벽지와 벽 사이로 물이 줄줄 흘러내려 방바닥에 고일 때도 있었습니다. 단독주택이면서 따로 출입구가 있는 집에 세를 들어 살 때는 구역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에 집주인이 찾아와 ‘똑똑’ 문을 두드리더니 당장 전세금을 내줄 테니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찬송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나 봅니다. 할 수 없이 저희 집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찬송가를 소리 내어 부르지 않고 성경말씀을 읽듯이 가사를 읽었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한 상황에 마음이 아파서 울고 또 한편 가사 한 절 한 절이 마음에 깊이 와닿으며 감동되므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금은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연립주택에 독채 전세로 들어가 마음껏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살던 91년 여름에, 장시간 폭우가 내리면서 안양천 물이 역류하여 온 동네가 난리가 나고 집 밖 골목에 물이 허벅지 높이까지 차올랐습니다. 1층인 저희 집의 문턱까지 채 10㎝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저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이사야서 43:2) 한 성경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더니 물이 빠져나가면서 저희 집은 무사하였습니다.



남편 회사의 사원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어 광명으로 이사한 후 저는 수석구역장 직분을 받고 교회학교에서 초등부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섬겼습니다. 교구 전도사님과 전도하러 다니며 멀리 논둑길을 걸어서 심방을 가는 재미 등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하게 해주셔서 매주 복음지 100부씩을 이웃 사람들에게 전하고 열심히 전도하면서 처음 전도상을 받았습니다.



시누이들이 고등학생일 때 더욱 시댁 식구들을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명절에 시골에 내려갔더니 시누이가 “언니, 저 엄마 몰래 교회 다녀요.”라고 하여 저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시댁 가족에게도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시댁의 가정복음화를 위해 더 노력하고 더 힘을 내서 기도하였습니다.



저희가 입주하여 생활하는 사원아파트는 3년의 거주기간이 끝나면 다른 직원가족을 위해 비워줘야 하는 집이었습니다. 남편이 사원대학에 다니며 공부하느라 특근 등을 하지 못해 월급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지만 저는 하나님의 복주심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며 헌신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낭비를 막아 주시며 그 3년 동안에 저축을 많이 하도록 여러 모로 도움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교사기도회 때 내 집 마련을 위한 기도제목을 내놓고 선생님들에게 기도해 주기를 부탁드렸더니, 총무님이 “안양에 사는 제 친구가 집을 팔아야 한다는데 한 번 가서 보시지 않겠어요?” 하였습니다. 총무님이 건네주신 주소를 보니 제가 단칸방에 살 때 안양천 건너에 있던 고층아파트, 제가 아이들을 세워놓고 배경을 삼아서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아파트였습니다. 우리 형편에는 너무나 크고 좋은 그 아파트를 사서 이사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해 주셨습니다.



시어머님 환갑 때에 동네잔치를 하기 위해 저와 큰 시누이가 먼저 가서 방앗간에 떡을 하러 가는데 이상하게 제 입에서 의도하지 않은 방언기도가 나왔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는데 집에 돌아오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영동소방서인데, 놀라지 마십시오. 곧 택시가 도착할 것입니다. 차는 폐차시키고….” 제가 방언으로 기도하던 그 시간에 남편, 아들, 시누이 둘을 태우고 시누이 남편이 운전하여 시댁으로 가던 차가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차가 중앙분리대를 넘어가서 갓길의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도된 큰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차에 타고 있던 다섯 사람이 사고 즉시 정신을 잃었다가 차에 불이 붙기 전에 깨어나서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였고, 모두 크게 다친 곳 없이 무사하였습니다. 조상님이 도왔다는 시어머니 앞에서 남편이 “애들 엄마가 평소에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니 이런 순간에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말을 하여 저를 더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에 시어머님의 핍박이 크게 줄었습니다.



시할머님이 저희의 새집 구경을 오셨는데 돌아온 주일이 마침 우리 교회 의료선교회에서 광명성전에서 진료봉사를 하는 날이었기에 몸이 가려워서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신다는 할머님을 모시고 교회에 가서 진료와 치료를 받게 해드리고 예배에 참석하여 결신하도록 도와드렸습니다. 할머님은 나이에 비해 건강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천국에 가셨습니다. 젊을 때부터 자주 아프셨고 특히 담석증으로 인해 안양 저희 집에 오셔서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수술도 받으셨던 시아버님은 제가 전도하면 “내가 병을 고치러 왔지, 교회가러 왔냐?” 하며 역정을 내셨는데, 주님을 영접하시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을 매우 못마땅해 하셨던 시어머님도 짧은 시간이지만 교회에 다니시며 복된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올해 3월에 천국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신 후 어머님은 ‘우리집에 복덩이가 들어왔다’며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5년 반 동안 시누이를 데리고 살면서 잘 보살펴 주었다며 고마워하셨습니다. 늦게라도 시부모님 두 분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였습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에서 엔데믹 상황으로 바뀌고 금요기도회를 교회당에서 드리게 되자 저는 금요기도회 성가대에서도 봉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니고 있는 회사에 저의 일하는 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한 달 넘게 계속 요청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금요일은 더 바쁘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는 회사에 저는 하나님이 주신 담력과 용기로 ‘그러면 나는 그만 두겠으니 다른 사람을 구하라’고 했더니 회사에서 저의 근무 시간을 조정해주고 월급까지 올려주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섭리해 주셨습니다. 저의 두 자녀도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자라서 지난 2019년 2월과 6월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요즘 성가대석에 앉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지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