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전도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단 한사 람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없습니다. 마찬 가지로, 한국 교회가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결단코 오 늘날과 같은 성장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 교회에 부흥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 뜻을 준행하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95.10.8
간
증
"오래 참아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조혜술
제
가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홀로 저희 네 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저희들을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저 는 믿지도 않는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점점 더 내 성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으로 변해갔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닐 무렵, 어머니는 예 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점점 비뚤어져 가는 저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눈물을 흘리며 권면하시곤 하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요청을 거절했지만 더 이상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어서 건성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84년에 믿지 않는 그이를 만나 결혼 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 개할 생각에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중동으로 떠났 습니다. 저의 심정은 무척 우울하고 비참하였습니 다. 중동에 간 남편은 그곳에서 주님을 영접하였 는데,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면 서로 주 안에서 만나는 것이 되는 거라며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라는 편지를 보내오곤 하였습니다. 그 후, 일년 반만에 귀국한 남편은 조금만 힘든 일에도 쉽게 좌절하고 더구나 교회에 나가기조차
3. 한국 교회는 사도행전적인 선교에 힘
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 교회에 부과된 선교의 사명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살펴 봅시다. 그 것은 곧 사도행전적인 선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는 것이 사도행전적 선교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
싫어하는 저를 사랑으로 위로하고 열심히 신앙생 활을 하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처녀 시절부 터 몸이 허약했는데, 결혼한 후로는 해마다 한 번씩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남편 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아기를 가지려고 유명하다는 병원을 쫓아다니고, 또 좋다는 약은 다 먹어가며 거의 5년 동안이나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고 빚도 져가며 어찌하든 성공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체력과 경제 력을 다 소진하고 깊은 실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친정 어머니께서 저에게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고 매어달리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회개를 하고 나서도 진실로 다 회개했는지 의심스러웠고, 자꾸만 반복 해서 회개를 해야 되는 것 같이 생각되어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91년 2월 어느 날, 성령대망회 시간에 저는 그토록 갈망하던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제껏 그 많은 원망과 불평을 들으시고도 무한정 기다려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비로소 깨 달아졌고, 저는 눈물로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그 순간, 불평과 불만투성이던 제 생활이 온 통 감사로 바뀌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주 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기도하 게 되었고, 구역장의 직분을 받아 기쁨으로 일하며 성가대에서 찬양 드리는 것이 가장 소중한 저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찬양 드릴 때마다 제 마음에 평강이 넘쳐났고, 모든 문제가 소멸되는 것을 체 험하는 새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앞세워 마치 선지자 요나와 같은 태도를 취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본 선교에 앞장서서 그들을 복음화시킬 사명을 인식 •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기게 되고, 두 민족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다.
'91년 12월의 어느 예배 시간이었나 봅니다. ᄃ 회장 목사님께서 신유의 기도 시간에 잉태의: 복을 하셔서 저는 즉시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작정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기도를 계속할수록 제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기 를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설령 잉태치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저희 부부에게 주시는 나님의 가장 좋은 축복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친척들이 '어느 절에서 불공 드리면 잉태 할 수 있고 또 어느 점쟁이에게 가면 잉태할 수 있다'고 권면할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서 주신 아기가 아니면 싫다'고 단호하게 뿌리쳤 습니다.
못하
'94년 1월에 저는 새벽 3시면 눈이 떠졌고 기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매일같이 기도에 힘 썼습니다. 그 한 달 후에 저는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제서야 그 동안 기도로 준비시키신 하 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평소에 혈압이 120-170으로 높았지만, 임신 기간 동안 늘 80-120으로 혈압이 안정되었고 입 덧도 전혀 하지 않은 채 '94년 10월 4일 드디어 결혼한 지 10년 만에 건강한 딸을 출산하게 되었 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아이를 낳지 못해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주는 남편을 주신 것과 시댁 식구들 모두를 구원시켜 주신 것과 항상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 으로 저의 간구를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일평생 자랑하며 이웃에게 전하면서 살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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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정시영 민대기 전상용 유형택
최철원 방유복 이정도 이경숙 송송 김말 ᄋ 임형
최덕 임영
윤석 최경
안승 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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