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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998.02.15] 슬픔을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1998-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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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2.15
슬픔을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장혜숙
는 인습적인 무속 신앙의 환경에서 자라 서 86년에 유교 사상에 젖은 남편과 결혼 했습니다. 삶의 극치는 이런 것이다라고 자부할 정도로 행복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90 년에 남편이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가 부도를 내고 빚까지 지게 되었고 '91년 7월에 안산으로 이사했습니다.
그 무렵 은혜와진리교회에 다니는 구역장님의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따라가서 예배 를 드리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도 "하나님이 세상 을 사랑하셔서 아낌없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를 내어 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구원의 말씀이 도무지 받 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남편이 파산을 하 였지만 수완과 능력이 남달랐던 남편은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었고 생활이 전보다 좀 궁핍했을 뿐 오히려 제게는 더 마음을 써 주었습니다. 구역예 배에 간간이 참석했고 성경도 더러 읽곤 했지만 그 것 역시 제겐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했고 성경 말씀 또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남편은 인간이 제 힘으로 노력한 만큼 행복을 누 릴 수 있고 그에 따라 생활도 견고하게 되는 법이 라고 주장하며 사후 세계는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선하게 살면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 지고 있었습니다. 시댁 또한 오로지 조상을 잘 받들 고 숭배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가정과 자손이 잘 되는 법이라며 제사 지내는 것에 정성을 다했습 니다. 그런 환경인지라 드러내 놓고 신앙 생활 하는 것을 엄두도 못 냈지만 저 역시 하나님을 왜 믿어 야 하는지 은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상태로 가 끔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 말씀을 교양 서적을 대하 듯이 읽었습니다.
'94년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구역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단호한 태도를 보 였습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용납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반대도 반 대였지만 저 역시 기독교 신앙에 관심은 갔지만 구 원의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 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해서 교 회와 하나님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 니다.
그 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주말마다 여행을 다 니며 육신적으로 만족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 해 8 월, 여름 휴가로 일주일 동안 동해안에서 지내다가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이 생겼습니다. 15년이 넘는 운전 경력을 자랑하 며 자동차 내부 설비까지도 잘 알고 있던 남편이 자주 다니던 도로에서 교통 사고를 당한 것이었 습니다. 저는 두 자녀와 함께 생명을 건졌지만 남 편을 잃는 참담한 슬픔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니라"(약 4:14)는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슬픔과 고통 가운데 지내면서 차츰 복음에 마 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믿어지지 않던 사실들이 하나 둘씩 믿어졌습니다. 하나님 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셨으 며 또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것이 믿어졌 습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토기장이와 그릇의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그릇이면서 토기장이 행세를 하 려 했던 지난날의 삶을 돌이켜 보며 회개했습니 다. 그 동안 교만과 아집에 싸여서 어리석은 생활 을 했던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고 보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도 크신 주님의 은혜와 구역 식구들의 사랑에 힘입어 참담한 슬픔의 고통이 어루만져 졌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 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 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 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1)는 말씀처럼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답게 주님께서 주시는 능 력을 받아 힘차게 살아가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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