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23.04.23] 저의 인생길에 힘들고 중요한 순간 ...김수희2023-04-2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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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인생길에 힘들고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저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신 하나님,

항상 저와 함께 해주시며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합니다”

 

김 수 희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하나님께서 오늘도 예배하는 저의 심령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신령한 위로와 새힘을 주시고 말씀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니 더욱 감사드립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대성전 입구 화단에 예쁘게 빛을 발하며 반짝이던 성탄 트리, 여름방학을 기다렸다가 즐겁게 참여했던 여름성경학교, 교회학교에서 전도사님과 선생님이 구연동화처럼 재미있게 가르쳐 주시던 성경공부 시간, 어머니와 함께 참석한 금요기도회 시간에 당회장 목사님을 따라서 복음찬송가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를 찬송하면서 배웠던 율동….



간증하는 지금, 저의 유년 시절 교회에서의 생활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안양에서 살 때에 동네의 수구역장님이 아버지를 먼저 전도하신 후 저희 가족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성품이 매우 완고하신 아버지가 제일 먼저 교회에 나가시고, 뒤따라 어머니와 저희 4남매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유별나게 강한 아버지의 성격으로 인해 어머니와 저희 남매들은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서도 그러한 아버지의 성품에 변화가 없으셔서 즐겁고 화목한 날보다는 가족 간에 힘든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위로를 해주시고 마음이 평안하게 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힘든 생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로 저희 4남매를 잘 키워주셨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예배를 잘 드리던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가 되자 부정교합으로 인한 치열 때문에 외모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학교에는 출석하지 않고 대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에만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청소년기 교회학교에서 배우고 갖추어야 할 신앙적인 소양과 기초지식이 부족하여 믿음이 잘 자라지 않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걸어서 다녔던 초등학교와 달리 제가 배정받은 중학교는 버스를 2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먼 곳에 있어서 통학이 힘들었습니다. 힘든 등하교 때문에 자주 피곤을 느끼면서 교회의 예배에도 빠지는 날이 많아지더니 시험 기간에만 겨우 교회에 가서 예배하는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저는 대학교 진학을 위해 인문계열의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워낙 아버지의 고집이 세셔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원치 않았던 학교에 들어가자 저는 공부에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낙심하여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꿈과 목표가 사라지고 까닭없이 몸이 피곤한 날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저희 가족은 광명시로 이사하였습니다. 어머니가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저는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고 학업에 충실하였습니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업무가 과중하여 매일같이 몸이 고단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리석게도 예배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 무렵, 당뇨가 있으셨던 아버지가 고혈압과 신부전증의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입원 전 검사를 위한 채혈을 하는데, 그 채혈하는 과정에서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처음으로 그런 아버지가 제 눈에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간병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저의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두 달 동안 병원에 계시다가 퇴원하셨습니다. 본래의 강한 성격에다 몸까지 약해지셔서 아버지는 전보다 더 식구들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 전에 저는 여러 면에서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를 힘들게만 하는 아버지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아버지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자식된 도리로 정성껏 돌봐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가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아버지와의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마음의 벽을 끝까지 어쩌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나중에 커서 경제활동을 하여 소득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고 싶어한 것이 치아교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편찮으시고 어머니께서 회사에 다니시지만 아직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이 있어서 저도 제가 받는 월급을 저를 위해서만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한 후에 또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무리하게 일을 하다보니 늘 잠이 부족하였고 그로 인해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른 채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며 내 뜻대로 살았습니다. 피곤하다며 주일에도 예배에 빠지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분별력을 잃어 내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서 자주 신앙에 반하는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마저 정기적으로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는 편찮으신 몸으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또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그만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스스로는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시는 병약한 아버지를 어머니가 휠체어에 모시고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위해 병원에 다니셨습니다. 그 때에 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제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니의 간병을 받으시다가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지켜보시는 가운데 소천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전도사님, 그리고 권사님을 비롯하여 구역장님과 성도님들이 많이 오셔서 장례예배를 드려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몇해 전 추석명절이 막 지났을 때 목에서 임파선이 붓고 동시에 눈썹에 염증이 생겨 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아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습니다. 피부과에 갔더니 ‘대상포진’이라고 하였습니다. 통원하여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대상포진이 발생한 부분에 직접 주사를 맞게 되는 것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많이 아프지 않고 빨리 낫게 해주세요. 나은 다음 꼭 간증문을 쓰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치료를 도와주셔서 빠르게 완치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되던 재작년에 저의 시어머님과 시아버님이 차례로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님은 다행스럽게도 돌아가시기 전에 사시던 곳에서 목사님을 통해 결신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아버님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부부가 급히 가던 중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시아버님은 제가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시고 주일에는 어서 교회에 가라고 채근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같이 교회에 가자고 하면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더 적극적으로 전도하지 못한 것을 지금도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장례를 치르는 중에 우리 교회에서 여러 분이 오셔서 많은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일가친척들이 다들 고마워하였는데,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남편이 누구보다 더 감사해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소망 중에 더욱 힘을 내어 남편을 전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간절한 기도 제목은 하루속히 남편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저와 함께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들이 평생 주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의 이러한 마음의 소원과 기대가 꼭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여 주실 줄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된 이후 지금까지의 저의 생활을 돌아보면 예수님을 떠나 살았던 때의 제 삶의 모습은 ‘어떻게 저렇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부끄럽고 후회막급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영의 눈이 어두워지고 분별력이 없어지면 참으로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저는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전에는 예배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고 예배하는 기쁨을 잘 모르던 저에게 이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감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편 119:103) 라고 한 이 말씀이 날이 갈수록 더 깊고 더 풍성한 저의 체험적 고백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할 때마다 한 구절 한 구절 그 가사에 담겨진 의미를 음미하며 한없는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의 찬송을 드리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바라던 치아교정을 시작하게 되어 또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요. 예쁘게 치아교정이 되어 더 밝고 환한 미소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열심히 전도하며 힘껏 봉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인생길에 힘들고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저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신 하나님, 항상 저와 함께 해주시며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