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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03.25]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고난과 역경이 유익이 되게 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2018-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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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5
(간증) -최광준-
66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고난과 역경이 유익이
되게 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나님께서는 제가 겪은 극한 시련을 통해서 자 아를 철저히 깨트려주시고 회개하게 하셨고, 저를 연단하셔서 속사람을 강건하게 변화시켜 주셨 으며, 고난이 유익이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해주십 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금요기도회 에 처음 참석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 회장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자양분으로 믿음 이 자라서 군에서 전역할 때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 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신앙 생활을 등한히 하더니 결국에는 쭉정이 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돌이 키도록 성령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책망하시며 제 삶 에 경고등을 켜 주셨지만 저는 끝내 하나님의 품을 떠나 타락의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금융위기 사태로 하던 사업도 접고 가만히 있는 것이 돈 버는 것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던 9년 전 에, 저는 오히려 부산의 아파트 신축공사장의 식당 운영권을 따내서 처음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 후 4년 동안 강릉에서의 골재 채취업과 가스관로공 사 골재 납품업에 이어 마지막에 서울에서 사채업에 손을 대는 등 4번의 사업을 벌였다가 모두 실패하였 습니다.
그러는 동안 전 재산을 잃고 가족들에게는 집안의 역적이 되다시피 하였습니다. 술로 괴로움을 달래면 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마 다 내일 아침에는 눈 뜨지 않게 되기를 바랄 정도로 괴롭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자를 갚을 날이 다가오면 피가 마르는 것 같았습니다. 조폭 같 은 사채업자들에게 갖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TV 드 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이야기가 저의 현실이 되었습 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를 이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원 망과 원한의 생각 대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 다. “아!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고 다시 나를 부르시는구나.” 그러면서 눈에서 폭포수같이 회개하 는 눈물이 쏟아지고, 입에서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찬송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 동안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전의 신앙 상태로 돌아가는 것보다 지구가 멸망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를 것'이란 말을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심령 이 강퍅하였습니다. "한번 비침을 얻고 하늘의 은사 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 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 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
금미터의 는 것이다(요1:17)
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 이라”(히 6:4-6) 한 말씀이 바로 저를 두고 하신 말 씀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탕자와 아버지의 비유'처럼, 하나님께 서 무한한 사랑으로 맞아주시고 아버지의 따뜻한 품 에 안아주셨습니다. 웬 말인지, 웬 은혜인지 저 같은 죄인을 다시 받아주셨습니다. 요즘은 "하나님이 나 를 구원해 주셨다"라고 속으로 외치기만 해도 심령 에 희열이 넘쳐나는 것을 느낍니다.
즐기던 술과 세속적인 것을 단 번에 끊고 20년 만 에 교회에 와서 수요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날 당회장 목사님께서 출애굽기 강해로 설교해 주셨는 데 그 말씀을 들으며 얼마나 기분이 묘하고 마음이 새롭고 은혜가 넘쳤는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황홀 함을 맛보았습니다.
현실은 냉혹해서 서울 면목동에 반지하 방을 얻어 이사를 하고 구리성전에 교적을 등록하여 열심히 예 배에 참석했습니다. 생계를 위해서 밤에는 대리운전 을 하고 낮에는 차량 탁송 일을 하느라 심신은 고달 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을 살찌우는 재미 로 지냈습니다. 요셉처럼 무슨 일을 하든 성실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는 와중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셨 습니다. 어떻게 손을 써보고 돌파구를 마련해 볼 수 도 없는 참담한 현실에서 저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 도하면서 절실하게 도움을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 은 제가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로 저를 시험하시고 제 마음을 연단하셨습니다.
다시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한 후 2년까지는 잃 었던 집과 재산을 어서 빨리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 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배를 드리던 중에 설 교말씀과 성령에 감화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 다. “나도 이제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야지." 그 순간 성령께서 제 마음에 신령한 기쁨이 충만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일 이후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 다. 조급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하나님께서 도 와주셔서 때가 되면 제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 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온유해지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게 되었으며, 이웃을 나 자신과 같 이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자로 변하였 습니다. 만물을 볼 때 예사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섭리의 손길을 발견하게 되 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면 어 떤 형편과 상황에서도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 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만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나의 생명 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습니 다.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이 저를 그렇게 변화시켰습니다.
5년 동안 하나님이 저의 심장을 살피시고 저의 폐 부까지 시험하시는 그 연단의 불을 통과했으면서도 아직도 제게 불순물이 남아있고 여전히 갈대와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많이 느끼며 애통해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늘 함께 해주심을 느끼며 수시로 하
나님께 묻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 지만 기도하고 뜻한 대로 잘 되지 않아서 "하나님! 저의 기도가 기복에 치우치고 요행을 바라는 기도이 기 때문인가요? 저의 믿음이 온전치 않기 때문인가 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아니다. 더 인내하라"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일예배에서 당회장 목사님이 우리가 어 떠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분별하게 해주는 설교말 씀을 해주셨습니다. 2600년 전 하나님께서 느부갓 네살 왕에게 꿈을 통해 계시하시고 다니엘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성경에 기록한 대로 이스라엘의 건 국 과정 등 그동안 진행되어 온 세계사의 전개과정 과 이제 남은 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 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 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더 인내하 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또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 지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해주셨습니다. 거듭된 사업 실패로 완전히 망하고 하나님의 품으 로 돌아온 지 만 5년째가 된 올해 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 서 환경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경매로 넘 겨야 했던 아파트와 상가가 원래는 재개발 구역이었 고 그 추진 과정에서 건물의 등기가 말소되는 행정 착오가 있었던 것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실수였든 착오였든 법원의 잘못을 바로잡고 수습하는 과정에 서 저의 큰 채무가 한 번에 해결되는 기이한 일이 일 어났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덤덤하다가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만감이 교차하여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성도가 하나님 면전의식을 갖고 생활하면, 하 나님 편에 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하나님 이 책임져주시고 환난이 복이 되며 고난이 유익이 되게 해주신다는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준행 하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께서 성령 으로 충만케 하시고 저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하나 님의 임재를 느껴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카락이 서 는 체험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아직 저에게는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이 있고 이루어 야 할 크고 작은 목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기 도하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 다. 왜냐하면 저는 '왕 같은 제사장요, 이제는 긍휼 을 얻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견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 문입니다.
저는 '가장 작은 자'라고 늘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 에 겸손한 바울의 고백과 다르게 저는 정말 그러합 니다. 나이가 쉰인데 아직 장가도 못 갔지, 모아둔재 산도 없지, 직업과 외모와 배경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합 "니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 칩니다. 이 주체 못하는 기쁨과 자존감은 어디서 온 ·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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