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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6.03.13] 오랜 세월 저를 지켜 주신 하나님, 어려운 일을 당한 때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2016-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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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16.3.13
*오랜 세월 저를 지켜 주신 하나님, 어려운 일을 당한 때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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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순-
는 일제 강점기에 화성 송산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이렇다 할 배움의 기회를 갖 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웃집 담장 너 머로 들려오는 찬송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곤 하였 지만, 워낙 집안이 유교의 사상과 전통에 철두철미 한 집안이어서 교회에 다니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 만 교회를 동경하였습니다.
면 소재지 가까운 동네로 시집을 갔습니다. 신랑 은 자상하고 성실하였으며 웬만큼 먹고 살 정도의 논과 밭을 일구는 농군이었습니다. 일찍 홀로 되신 시어머님은 당시 시골에서는 드물게 교회를 다니고 계셨습니다. 시어머님은 질병을 앓던 중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를 받으신 후, 신주를 불태우 시고 제사를 추도식으로 바꾸는 등 집안의 모든 유 교적 관습을 버리셨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주일예 배만 가끔 참석하는 정도였습니다.
농사짓는 일과 시집살이는 제게 몹시 힘겨운 일이 었습니다. 주일에 시어머님을 따라 교회에 가고 싶 어도 저는 남아서 함께 사는 시누이 식구들을 비롯 하여 인근의 사촌들 등 집안 많은 손님들의 뒤치다 꺼리를 하고 농사일도 도와야 했습니다. 그처럼 결 혼 초창기에는 제 의지와 달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 려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하여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은 것이 제 신앙생활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에는 자녀들과 함께 꼭 예배에 참석하고 구역예배도 드리면서 비로소 성 도다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누이와 작은 서방님이 분가해 나가고 어머님마 저 돌아가시자 남편은 시골 땅을 모두 팔아 면 소재 지에 철물점을 열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교회가 가까워서 더 열심히 교회생활을 할 수 있어서 참 좋 았습니다.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특히 큰 아들의 공 부를 위해 인천으로 이사하였습니다. 부흥회를 인도 하셨던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교회가 그곳에 있어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평온함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남편 이 폐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때는 이미 수술이 불가능할 만큼 많이 진행된 후라서 서울대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하여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야 했습니다. 퇴원한지 며칠이 안 되었을 때, 남편이 잠자는 저를 깨우며 성경 요한계시록 3장 5절 말씀 을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 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 리라."
저는 '남편이 이제 세상과 이별하고 천국에 가려 나 보다.'고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하 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큰 딸이 26살, 큰 아들 이 24살, 군 복무 중인 둘째 아들이 22살이었고 막 내는 아직 고등학교 3학년일 때였습니다. 집안의 기 둥이었던 남편을 보내고 잠시 온 식구가 실의에 빠 졌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굳건한 신앙심으로 이를 극 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큰딸은 곧 든든한 사위를 만나 시집을 갔고 큰아들은 군 복무를 하면서 미곡상을 운영하는 저를 도왔습니다. 작은 아들도 제대하자마 자이 일을 이어갔습니다. 남편의 빈자리를 그렇게 자식들이 돌아가며 맡아 넉넉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잘 꾸려갈 수 있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 을 만나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 나님의 도우시는 은총을 입으면서 자식들의 신앙심 이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저도 집사 직분을 받은데 이어 권사 직분도 받았습니다. **
큰아들이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이곳 안산으로 회 사를 옮기면서 집도 이사하였습니다. 더 열심히 교 회중심으로 생활하고자 다닐 교회를 찾는 중에 마 침집 옆으로 큰 교회당이 건축 중이었는데, 은혜와 진리교회 안산교회당이었습니다. 그렇게 멀리 돌아 서 마침내 제 남은 인생의 귀한 반려가 될 우리 교 회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 드립니다. 초기에는 막내아들이 아직 대학생이어서 학비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까 하여 공단으로 직장에 다니느 라 변변한 봉사를 하지 못했지만 자녀들이 모두 결 혼하고 자리를 잡게 되어 온전히 주님의 일에 헌신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성가대 봉사를 지 속하고 있으며 그 외에 교회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슬펐던 일은 2006년에 둘째 아들 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고를 이기지 못하고 저보다 먼저 천국에 간 것입니다. 저와 가족에게 여러모로 즐거움을 주던 멋쟁이 아들을 떠나 보내고는 한동 안 그 이별의 아픔을 신앙심으로도 감당하지 못했 습니다. 주님을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는 곧 저로 하여금 아들과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하 면서 소망 중에 그 슬픔 또한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 더 열심히 살아가도록 위로와 평강을 베풀어 주셨 습니다. 예배하고 봉사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신 령한 도움을 주시고 살아갈 새 힘을 주셨습니다. 하 나님 아버지께 무한 감사 드립니다.
제 나이 어느덧 여든 다섯이 되었습니다. 큰딸과 사위는 권사와 장로의 직임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 고, 막내아들 내외 또한 변함이 없는 한결같은 신앙 생활로 저를 흐뭇하게 합니다. 다만 든든하고 착한 큰아들의 가족이 신앙생활에 기복이 심해 제 마음 을 안타깝게 합니다. 이 큰아들 가족이 어릴 때의 순전하고 뜨거운 신앙을 회복하고,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가 없는 둘째 며느리와 손자들이 주님의 인 도와 보호하심 속에 늘 건강하고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 지금의 제 간절한 소원이며 기도 제목입니다. 제 모습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며 부끄러운 신앙고 백이지만, 저의 이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을 받으시고 저의 이 소원과 기대도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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