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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3.12.01] 무한하신 사랑과 능력으로 저희 가정에 복 주시고 늦둥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2013-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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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13.12.1
"무한하신 사랑과 능력으로 저희 가정에 복 주시고 늦둥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김순희-

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각장애인이신 고모님을 모시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시골이라 농사일이 많아서 당시 어려서부터 밤낮으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특히 누에를 많이 쳐서 저 녁마다 뽕 잎을 따는 것이 제게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그처럼 부모님을 도와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주일에는 부모님 몰래 고모님과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2개 나 넘는 먼 길을 오가며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만 일 교회에 가지 못할 때는 길에 가마니를 깔고 기름으 로 불을 밝혀 고모님의 인도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예 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완강하게 반 대하시는 부모님은 제가 교회에 갔다 오는 날이면 아예 대문을 걸어 잠그고 저녁밥도 차려주질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저의 믿음과 사랑이 그렇게 언제나 변 할 것 같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중학생이 되고 고등 학생이 되면서 차츰 믿음이 식어져갔습니다. 고등학교 를 졸업하고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서 안마사 일을 하 고계신 고모님을 돌보며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부터는 아예 주일에 예배를 빠지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세상 의 즐거움을 탐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세상 재미에 빠진 그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오른 쪽 가슴이 걸리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는 것이었 습니다. 제가 너무 아파하면 고모님은 “너, 어제 교회에 갔다왔니?" 하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그때는 야단맞지 않으려고 "예" 하고 거짓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주 일을 지켜 고모님과 함께 교회에 갔다 오면 기이하게도 통증이 말끔히 사라지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저를 사랑하시고 저의 손을 붙잡아주고 계심을 확신하 고, 고모님의 권면대로 회개하고 감사하며 예전의 믿음 을 회복하였습니다.
부모님은 8남매 중 셋째 딸로 서울에 올라와 지내는 제게 큰 기대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적 령기가 되자 세상적으로 조건이 좋은 남자와 만나 결혼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한번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인 남자를 신랑감으로 점찍어 놓으시고 선을 보라고 하 셨지만, 상대가 불신자이고 더욱이 장남이어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기에 저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그 후 결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결혼이 늦어져 서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저는 반드시 하나 님을 믿는 청년,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는 청년, 예배생 활에 절대로 방해가 되지 않을 집안의 청년을 만나 믿 음과 사랑의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하며 일 주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작정기도를 드렸습니다. 작정기도를 마치자마자 선을 보게 되었는데, 하나님 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의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어떤 조건도 보지 않고. 그 사람과 집안의 신앙만 보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 리고 교제를 시작한지 두 달 만에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제 뜻이 너무도 확고하므로 부모님도 결국 허락해 주셨습니다. 신혼살림을 차리고 나서 받은 첫 월급을 남편이 시어머님께 드리면서 그 중 십일조는 떼어서 저로 하여금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해주어서 남 편에게 고맙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기도 했던 대로, 남편과 함께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저 는 구역장이 되어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 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우리나라에 IMF 태풍이 휘몰 아쳤을 때, 남편의 회사 또한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법 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당시 크고 유명한 제빵회사였는데 하루아침에 대구와 청주에 있는 공장 문을 다 닫고 직원 3천명을 감원하여 시화로 공장을 옮기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저는 하나 님을 앙망하며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당시 로서는 기도밖에 저와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 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고 모든 일에 성 실한 제 남편을 도와주셨습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도회사에 계속 남아 근무할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후로 회사가 다시 안정되고 발전하여 우리나라에 서 제일 큰 제빵회사로 거듭나게 되었고, 남편은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오늘도 회사에서 열심
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남편의 수입만으로도 살림 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낭비를 막아주시고 제 게 지혜를 주셔서 규모 있게 살림을 잘 꾸려가게 해주심 으로 시어머님을 모시고 대학생 자녀를 키우며 저희가 족 모두가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넉넉하지 않 은 형편에서도 하나님께 몸과 물질을 드려 섬기고 헌신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할 때에 하나님께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복을 베풀어 주셔서 전셋집 생활을 청산하고 내집을 마련한데 이어 더 큰 집을 사서 아무 어려움 없 이 한량없는 기쁨과 감사로 가정예배와 구역예배를 드 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놀랍고 감사한 일은, 제 나이 43살에 하 나님께서 늦둥이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처음 그 임신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 기왕이면 제게 아들을 주세요. 지금 제게는 대학생 딸이 있잖아 요. 그리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자녀가 되도록 하나님이 맡아서 길러주셔야 돼요. 저희 부부 나이가 너무 많잖아요" 하며 기도했습니다. 온 가족이 감사하 며 기도했더니 노산인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검사를 받 지 않고서도, 수술하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고 잘 생긴 아들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아들이 지금 10 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반장을 하 고 교회에서는 성가대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쁩니다.
늦둥이를 낳고서 허리디스크로 며칠을 병원에 입원 해 있는 중에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하고 당회장 목사님 이 신유와 축복의 기도를 해주실 때, 허리디스크와 함 께 그동안 냄새를 정상적으로 맡을 수 없게 했던 비염 알러지까지 깨끗하게 치료 받는 은혜도 받았습니다. 뿐 만 아니라 시어머님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화목하게 되 어 시어머님과 남편의 도움과 협조로 제가 맡고 있는 만나실 중책과 수구역장의 임무를 어려움 없이 잘 감 당하게 되었습니다. 정녕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 도하시는도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 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 로다"(시 23:1-6). 할렐루야! 변함없는 사랑과 크신 능 력으로 함께 하시며 저희 가족을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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