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
06.10.22
수필
"길 안내"
이문숙
수님을 믿는 신앙을 갖게 된 일이 엊그제 같 은데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렸습니다. 은 혜와진리교회에 첫 발을 딛는 그 날부터 오늘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교회가 생 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옛 친구들과의 왕래는 자 연히 멀어졌습니다. 내가 사귀고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교회 교인들뿐이라고 해도 지나 친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활동 반경도 거의 일정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는 길도 많지 않고 길을 찾는 데는 아주 둔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곳저 곳 많이 다녀야 아는 길도 많을 터인데 그럴 이유나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이제는 옛날 친구들과 어울 려 다니던 장소나 길조차 어렴풋하게 되고 말았습 니다.
그러나 이는 내가 길을 많이 알지 못하고, 잘 찾 지 못하는 데 대한 자기 타당화의 구실일 뿐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길눈이 어두운 것이 근본 원인입 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길눈이 어두운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운전을 하면 확실히 그 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좌우 회전을 해야 할 지점을 놓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주 행하다가 이렇게 되면 아주 난감하게 됩니다. 다시 되돌아오는 데 무척 마음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러 니 초행길을 가야 할 경우는 지나치게 긴장하게 됩 니다.
생소한 길을 갈 때는 약도를 가지고 있어도 도중 에 몇 번씩이나 차를 세워 길을 묻곤 합니다. 이렇 게 길을 묻기를 많이 하다 보니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여러 종류인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알지 못하여 가 르쳐 줄 수 없음을 미안해하는 사람, 퉁명스러운 어조로 모른다고 하는 사 람, 애써 가르쳐 주지만 엉뚱하게 가 르쳐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러는 아주 친절하고 정확하게 알려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길을 용이(容易)하게 잘 찾아가 게 되면 고마운 생각이 오랫동안 마 음에 남아있게 됩니다.
오늘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났습니 다. 교구 기도회가 끝나자 구역장님
들과 함께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병 원에 입원한 성도였습니다. 병원 위치에 대해 누가 일러 주는 대로 대략 머릿속에 약도를 그리고는 출 발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중도에 길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설명해 준 길로 한참 갔더니 듣지 못한 갈림길이 나와서 부득이 또 묻게 되었습니다. 카센터의 직원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그 직원이 제 말을 듣더니 '말로 해서는 찾기가 어려울 터이니 약 도를 그려 주겠습니다.’하였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 고는 약도를 그리는데 삼거리 사거리표시를 해주 며 좌우 회전할 곳 그리고 대략 거리가 얼마나 되 는 지까지 상세하게 적어 주었습니다. 거기다가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표시하여 주었습니다. 정말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친절에 감동되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연거푸 했습니다. 이미 목적지의 절반을 간데 다 확실한 약도까지 얻고 보니 목적한 곳에 도착 하기까지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운전할 수 있었습 니다.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인생과 길'에 대한 상념(想)이 마음을 채웠습니다. 사람은 일생을 길 찾기와 길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비단 지도 상으로 표기되는 이 땅위의 길 뿐 아니라 자신이 가 야 할 진로를 찾고 선택하게 됩니다. 한 번 선택하 면 한평생 가게 되거나, 계속 갈 수 밖에 없는 길이 있는가 하면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길 선택이 일평생에 미치는 영향은 사소할 수도 있 지만 매우 중대하고 결정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중대하고 결정적인 길 선택은 신앙 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길은 영생이나 멸망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에 결부(村)된 것입니다. 좋은 길 안내자의 자질 대해 생각해 보 에 았습니다. 먼저 길을 숙지(知)하고 있어야 합니 다. 자신이 어렴풋하게 알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 게 명확하게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친절해야 합니 다. 퉁명스럽게 말하면 길을 묻던 사람이라도 감정 이 상해서 '그만 두세요할 것입니다. 세상의 길들은 모르는 사람이 알 만한 사람에게 가서 묻기 마련입 니다. 그런데 천국 가는 길은 묻는 사람이 드뭅니 다. 가르쳐 주려고 해도 거절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입니다. 그러니 호감을 갖도록 접근하는 지혜가 필 요합니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오늘 보았던 그 친 절한 카센터 직원을 떠 올리며 크리스천의 사명이 길 안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 다. 그리고 최상의 길 안내자가 되어야겠다고 스스 로 다짐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