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
수필
06.9.17
"사랑초 이야기"
이문숙
난해, 남향(向)집으로 이사를 앞두고 햇볕도 좋을 터이니 하며 베란다에 조그 만화단(壇)을 만들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화초에 대하여 그다지 아는 바가 적어서 동네의 작은 화원에 화단 규모에 적당한 것들을 부탁해 두었습니다. 이사한 며칠 후 집안 정리가 끝날 무렵 화초들이 도착하였고 아주 아담한 화단이 완성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나를 보아주세 요'라는 듯이 명패를 달고 온 화초가 있었습니 다. 바로 '사랑초'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랑초 는 나의 화단에 작은 자리 하나를 차지하게 되 었습니다.
화려한 모양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지만 실은 유난히 약한 하나의 줄기 위에 붉은 잎 몇 개를 모자처럼 얹고 있었습니다. 늠름하고 시원스러 운 다른 것들에 가려 존재조차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름표를 달고 오지 않았다면 어 찌 사랑초라는 것을 알기나 하겠습니까. 나는 그저 화원에서 일러준 대로 화초들을 돌보았습 니다.
사랑초는 그 가는 줄기 탓에 잊고 있으면 쓰
러질 듯 누워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랑초에게는 각별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 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초의 투정은 반복되었습니다. 조금만 잊고 지내면 곧 죽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다른 것들은 그 저 가끔씩 돌보아도 가지 위에 가지를 내고 잎 새 위에 잎을 얹으면서 탈없이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사랑초에게는 유독 마음을 쓰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고지식하기까지 하 여 가늘고 연한 줄기 하나씩 만을 내어놓으며 쓰러졌다가 일어나기만을 반복하는 것을 보니 '명색이 사랑초인데 기쁨을 주지 못할 망정 왜 이리도 까다롭게 구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짧은 가을과 긴 겨울을 지나 햇살이 기쁨으로 넘실대는 봄을 지낸 사랑초는 무더위가 한창인 8 월에 저와 함께 동향(東向)집으로 거처를 옮기 게 되었습니다. 겨울도 나고 봄도 지낸 후에 이 사를 하게 되었는데 글쎄 어찌 된 일인지 사랑초 의 줄기들이 모두 아주 쓰러져 다시는 일어날 생 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못내 서운한 마음 이 들었지만 폭염 속에서 이사를 하여 그런가 보 다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수 없지'하고 기대를 접 었습니다. 한편 그래도 한번 기다려 볼까 하는 미련이 남아 있어서 한 구석에 버리듯이 놓아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잊고 있던 며칠 후, 마 치 '저를 버리지 않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듯 새싹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저는 곧장 물을 주고 이번에는 가장 잘 보이고 늘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식탁 옆 의 탁자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누군가 사랑초를
가리키며 "이 화초 꽃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하였습니다. 아, 이토록 가엽고 애처로운 꽃말 일 줄이야. '나를 버리지 마세요'가 사랑초의 꽃 말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나약한 꽃말일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니야, 사랑초에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라고 감탄했습니다. 비로소 사랑초라는 이름표를 단 이유를 알았습니다. 줄 기들이 자주 쓰러지는 것도 자신의 나약함을 관 심과 도움을 얻어서 극복하려고 하는 투정이라 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초를 버리지 않고 가까이 갖다 놓은 것이 잘한 일이었습니다.
다 자란 사랑초를 어디서 본 적이 있었는데 나약한 모습은 마찬가지였지만 꽃이 피어 있었 습니다. 안개꽃 같이 작고 앙증맞은 모양의 꽃 이었고 고운 연분홍 색깔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연상하면서 나의 사랑초에게 '부디 내 곁에서 잘 자라 예쁜 꽃을 안은 그 모습을 보여달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순간 문득 관심과 돌봄으로 표현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 기에 이르렀습니다. 보잘것없고 심히 나약한 나 를 하나님이 택하여 주시고 "사랑하는 자"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자주 넘어지고 쓰러져도 결 코 버리지 아니하시며 오히려 그럴수록 더 가까 이 두시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셨습니 다. 그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감사를 나타내는, 비록 작지만 예쁜 연분홍 꽃들을 피우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속 깊 이 이렇게 다짐하였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꽃을 항상 피우는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