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마음을 토로하는 한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아들을 잉태 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여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나 슬픈 일을 만나게 될 때에 혼자서 괴로워하거나 낙심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정을 토로 함으로 진정한 위로와 구원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간증
96.7.14
"절망의 늪에서 구해 주신 하나님"
김 영
애
는 불신 가정에서 성장하여 역시 신앙이 없는 남편을 만나 '78년에 결혼했습니다.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꿈꾸었으나 다가온 현실은 전혀 달 랐습니다. 남편은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설상가 상으로 간염 때문에 병원에 입원할 정도였으니 가정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85년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안양에서 가게를 얻었습니 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인지라 장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가게의 위치가 좋아야 하는데 장사를 처음 시작하는 터라 무턱대고 얻었던 것입니다. 겨우 생계는 유지가 되었으나 빌린 돈을 갚을 길이 막막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가게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보러오는 사람마다 위치가 좋지 않다며 그냥 가는 것이었습니다. 신문에 광고까지 내면서 3년 동안 사방팔방으로 애를 썼지만 가게는 팔리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빌린 돈 때문에 전전긍긍했고 정신적인 고통이 심해서 밤이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등에서 식은땀이 나서 옷을 적실 정도였 습니다. 저 역시 삶의 소망이라곤 없었습니다. 하
사무엘을
한나가 아들 사무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무엘로 인하여 한나는 지난날의 서럽고 고통스런 기억을 모두 잊고 대적 브닌나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어린 사무엘에 대한 한나의 사랑은 남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인간적 인 애정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을 어기는 잘못을 범치 않았습니다. 일전에 한나는 실로에서
루하루가 절망의 늪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은혜와진리교회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웬일인지 그 교회에 가고 싶었습니다. 안양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고 물어 물어서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들어 선 순간 '아! 정말 이곳이 내가 편히 쉴 곳이구 나.'하며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평안이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당회장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그 동안 얼마나 헛된 삶을 살았나 깨닫게 되 었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때가 '88년 봄이 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교회 다니는 일, 예배 드 리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한번은 구역장님과 함께 '가게 매매' 문제를 놓고 오전 금식을 하며 며칠 간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 즈음에 구역장 세미나가 열려서 가게문을 닫아 놓고 구역장님과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신유 및 축복 시간에 당회장 목사님께서 "부동산 매매가 잘 안되신 분은 하나님께서 매매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기뻐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 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음날로 가게 매매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주님께서 주시는 한없는 사랑과 은 혜를 맛보았고 감사함으로 구역장 직분을 받아 맡은 바 주님의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시댁 식구 들은 종갓집 맏며느리가 예수를 믿는다며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 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생각
경솔하게 하면 안된다. 만약에 지키지도 못할 새 원을 경솔히 하였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통절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서원을 철회함이 마땅하다. 그 러나 성도가 강압에 의하거나 감정에 치우쳐 한 서원이 아니라 온당하게 한 서원이라면 해로울지 라도 기꺼이 서원한 것을 갚아야 한다(시 15:4).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는 말씀을 붙들고 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을 지켜 나갔습니다. 특히 •저희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예배 드리러 가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어머니의 마 음에 들지 않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 어머니는 저도 직장에 나가기를 원하셨지만 저는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요 소 중한 일이었기에 시어머니의 뜻을 따를 수가 없 었습니다. 구역장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설 때와 집에 다시 들어갈 때마다 시어머니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보다 소중한 것이 없기 때 문에 타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댁 식구들, 그 중에서도 시어머니와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간절 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을 뿐 아니라 교구장님께도 기도를 많이 받았고 구역 식구들과도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좋으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 셔서 '90년에는 시어머니께서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고 '92년에는 남편도 결신하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 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 33)고 하신 주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신 것입 니다.
절망 가운데 거할 때 소망을 주시고 사망의 길 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늘 생각하며 주님의 일에 전심전력하여 살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