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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992.02.16] 시련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1992-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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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92.2.16
시련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
관양C교구
홍명호 구역장
1080년도에 그동안 불교를 열심히 믿었던 친정 아버
님이 갑자기 기독교로 개종하셨으며 그런후 7개월 만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님은 운명하면서 천국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며 하나님이 손짓한다고 하면서 웃으며 “예수 잘 믿고 천국 에서 만나자"는 유언을 남기시고 은혜가운데 소천하셨습 니다.
당시에 저는 약혼한 상태였는데 시댁은 불교를 믿고 있 었습니다. 시부모님께서는 친정 아버님을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른것을 아시고는 약혼한 것으로도 이미 우리 식구가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교회를 다니지 말라고 하였 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따랐으며 결혼후에는 시댁의 뜻
을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결혼 생활은 평탄하였으며 첫 딸까지 낳았습니다. 친정어머님은 저만 보면 교회를 다니라고 권면하였으며 저는 다음에 믿겠다고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 는 예수님의 존재를 점점 더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온하기만 하던 생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 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지나칠 정도로 아들 손자를 얻고 싶어 하셨으며 그 요구에 부응이나 하듯 84 년 6월에 3.8kg의 건강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고 보 니 모두 내 세상이나 된듯 기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 쁨도 한순간 4일만에 애기가 얼굴부터 발끝까지 샛 노랗 게 변했습니다. 너무나 놀라서 병원에 가보니 애기의 피 가 맞지 않아서 그렇다면서 교환 수혈을 해야 한다고 하 였습니다. 교환 수혈이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지 금 아기의 피가 맞지 않기 때문에 아기의 피를 빼고 몸에 맞는 피를 바꾸어 넣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교환 수 혈을 한다고 해도 애기의 황달 지수가 너무 높아 뇌성마 비가 될 확률이 거의 99%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애기는 교환수혈을 받았지만 의사의 수고도 헛되이 죽 고 말았습니다. 그런후 의사는 온 가족이 있는 가운데 저 에게 더 이상 아기를 낳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의 혈액형이 B형이고, 제가 O형인데 B형과 O형 사이에 일천쌍중 한 쌍에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데 저 희 부부가 그 중의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며칠 간이라도 살았지만 다음에 애기를 낳으면 낳을수록 생명이 단축되고 그러다보면 낳기도 전에 뱃속에서 죽게 되어 산후병까지 얻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시 아버님은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계속 아이를 낳을 것을 요구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첩이라도 얻게해서 아들 을 낳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낙심가운데 있던 저는 친정어머님의 예수를 믿으면 건 강한 아들을 낳을 수 있게 된다는 말에 물에 빠진 사람 지 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
다. 저는 친정어머님의 권유로 100일을 작정하고 오전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부모님 께서는 이러한 저의 신앙생활을 핍박했지만 저는 계속해 서 신앙생활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작정기도 일개 월후에 애기를 갖게 되었으며 건강한 아들을 낳게 되었습 니다. 아이의 혈액형이 B형이어서 시댁에서는 불안해 했 지만 저는 남편에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며 걱정말라고 하였습니다.
그후 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건강하게 자라기 시 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은 후에도 시아버님은 저의 신앙생활을 계속 핍박했으며 저는 남편의 직장이 다른 곳 으로 발령이 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한지 얼마 후에 남편은 안양으로 발령되어 이사오게 되었으며 저는 그때부터 남부순복음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아버님은 멀리 떨어진 저에게 계속해서 교회를 다니 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을 하시더니 2년후에는 신앙생활을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구역식구들과 함께 열심으로 기도 한 것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심임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후 저에게 무릎관절염이 있었는데 월요 축복기도회 시간에 당회장 목사님께서 “이 시간 무릎이 아픈 사람을 하나님이 치료하십니다"고 말씀하신 이후로는 깨끗이 나 았습니다.
이러한 신유의 체험을 한 후로는 저의 믿음이 더욱 깊 어졌고, 남편 역시 함께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기도가운데 낳은 아들 동혁이는 하나님의 능력으 로 보호함을 받아 건강하게 자라 금년에는 국민학교에 입 학하게 되었습니다.
시련가운데 믿음을 굳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하며 친정아버님이 먼저 걸어가신 믿음의 길을 힘써 따라 가며 복음을 전하며 살고자 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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