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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990.09.30] 인내의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1990-09-30 00:00
작성자


간증
90.9.30
인내의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4-2교구
최은 진 구역장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께 대한
깊은 믿음이나 기도생활도 없이 습관적으로만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중매로 맞선을 보게 되었는데 상대편 에서는 당장 결혼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 신앙의 가정이어서 처음에는 계속 거절을 했지만 그 집에서는 요즘 신앙은 자유이니 교회에 다니는 것은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습 니다.
결혼후 수원에 살면서 가까운 곳에 있던 남부순 복음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얼마 동 안은 습관적으로만 왔다갔다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신앙열심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하 루는 거실의 전등을 청소하려고 나사를 풀던중 유 리가 떨어 지면서 얼굴에 맞아 안팎으로 20바늘씩 꿰매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친곳이 얼굴이라 흡 터가 생길 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 나님앞에 교만했던 마음과 나태한 신앙생활을 회개 하며 치료해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저의 기도를 들으셔서 남들이 봐도 다친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깨끗이 치료를 해주셨 습니다.
그후 저는 신앙생활에 조금씩 열심을 더하게 되 었으며 89년 4월에 구역장직분을 맡으면서 순복음 적인 열심있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구역장직분 을 맡은후로 구역장기도회나 성령대망회등에 쫓아 다니면서 저의 기도생활은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의 가정엔 남편의 직장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결혼후 얼마 있지 않아 다니던 직장이 성격에도 맞지않아 더 이상 다닐 수 없다며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매일같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을 하던 사람이라 크게 놀라진 않 았으며 이젠 시댁에서 무엇이라도 차려 주겠거니하 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후로 시댁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을 유지 하면서 장사를 해 볼려고 이것 저것을 알아봤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를 않았습니다. 몇 달이 못 되어 시댁에서 보내준 오백만원을 생활비로 다 쓰고나니 그때부터 시댁에선 남편이 장남이고 또한 객지에서 는 점포값도 비싸고 장사를 해도 돈이 많이 드니 시댁으로 내려오라고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불신앙의 시댁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자신이 없어 앞이 캄캄했습니다. 또한 이제 막 구역장의 직분도 맡아서 주의 일을 하며 믿음으로 살아갈려고 하는데 그것도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 때부터 시댁으로 이사가지 않게 해 주시도록 간절 히 기도하였습니다. 사업장을 주셔도 수원에 주시 도록 간구하였습니다.
시댁에서는 시골에 있는 땅에다가 주유소를 내기 위해서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 땅이 입지조 건이 좋아서 정유회사에서도 허가를 내 주었습니다. 이제 관계 군청에 서류를 제출해서 허가만 나면 바로 공사에 들어갈 상황이었습니다. 허가가 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하던 저는 어느 금요철야예배에 군청에 들어갈 서류를 가지고 와서 당회장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예배시간에 서류위에 믿음의 손을 얹고 이 서류가 절대로 허가가 나지 않게 해 주시도록 기 도하였습니다. 그후 모든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허 가가 날 수 밖에 없었던 주유소는 기도한대로 허가가 나지를 않았습니다.
시댁에선 주유소가 되지 않자 이번에는 한일합 섬대리점을 내주겠다며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시댁 에서 남에게 전세준 점포의 임대만기가 올 3월이 었습니다. 시댁에선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를 전세 놓고 시댁으로 들어오라고 계속 성화였습니다. 남 편은 끝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저를 답답 하다고 했으며 그로인해 말다툼도 잦았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작정기도를 하며 남편의 적성에 맞고 환경도 좋으며 보수도 안정된 직장을 주시도록 인내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의 말씀들을 수첩에 적어놓고 매일같이 그 말씀들을 부여잡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시댁과 남편의 성화에 견디다못한 저는 어쩔 수 없이 시댁으로 내려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내려가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의 모든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겠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에스더 4장 15절~16절의 말씀을 기억하며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의 각 오로 삼일을 금식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신 앙만은 버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기도하였습니다. 시댁에서 있는 동안 불신앙적인 분위기로 인해
낙심하고 좌절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오뚜기처럼 일어나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시 댁에서는 계속해서 의류회사를 찾아다니며 점포를 개설하기위해 힘을 썼으며 곧 될 것처럼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원에 직장을 얻고자 하는 소원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기도하고 있었 던터라 아무도 모르게 빈 점포에 가서 여기서 의 류가계를 할 수 없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회사마다 위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허가를 하지않아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믿고 감사하였 습니다.
시댁에 있으면서도 남부순복음교회에서 기쁘게 신앙생활하던 모습이 항상 생각이 났으며 주의 종 님들과 구역식구들이 보고싶고 그리워졌습니다. 그 동안 구역장으로서 열심히 일하지 못했던 것이 회 개가 되며 주님을 잘 섬기고 싶은 소원이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이러한 인내의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아니하셨습니다. 아직 주소를 옮기지 않았고 완전히 이사를 끝내지 않은터라 남편이 예비군 훈 련차 금년 6월에 수원으로 함께 올라왔습니다. 6월 13일 훈련을 끝내고 짐을 싸서 집으로 내려갈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그 전화는 그동안 부르짖어 기도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 니다.
3년전에 이력서를 넣은 학교에서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기술선생 님이 급히 필요한데 당장 출근 할 수 있느냐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간다고 대답을 해놓고 남 편에게 이야기를 하니 다시는 직장생활을 안하겠다 고 하던 남편이 학교쪽에는 그전부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응락을 했습니다. 요즘 학교에 자리가 나기가 힘이 들어 남편보다 더 좋은 대학 출신자들도 많이 이력서를 제출해 놓았는데 남편에게 자리가 주어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신 역사임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년 6개월만에 저의 기도에 가장 좋은 길로 응답해 주셨으며 그동안에 많은 고난도 있었지만 이러한 고난이 저의 신앙을 더욱 견고케 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몸된 교회에서 주님을 마 음껏 섬기며 살수 있는 생활이 얼마나 축복된 삶인 가를 깊이 깨닫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후로 시댁에서 올라와서 남편이 학교로 출근을 하였는데 교사의 직업이 자신의 성격에 너무나 잘 맞는다며 좋아했으며 학교가 기독교재단이며 분위 기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기도한 대로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남편은 주님을 믿고 침례도 받았으며 예배생활에도 열심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단련하시고 인내하며 간구하는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합니다.
9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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